“믿기지 않는다…” 다또아 별세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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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tents Plus

한국 뷰티 크리에이터 1세대로 불리던 다또아가 향년 2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속사 레페리는 지난 16일 고인의 작고 소식을 전하며 마지막 길을 함께해 달라고 전했습니다. 이미 활동을 멈춘 지 시간이 흘렀지만, 다또아 별세 소식은 다시 한 번 그녀의 이름을 현재로 불러냈습니다.

싸이월드 1000만 시절

다또아는 화장법을 알려주는 유튜버 이전에 블로거였습니다. 고교 시절 라오스 유학 중 한국 화장품의 위상을 체감한 뒤, 이를 알리고 싶다는 이유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싸이월드 방문자 수가 1000만 명을 넘겼던 시점은, ‘크리에이터’라는 말조차 낯설던 때였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인플루언서의 시작점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취미에 가까운 활동이었습니다. 광고도, 협업 구조도 정립되지 않았던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 예전에 본 기억 있다”고 말하게 됩니다.

유튜브 개설 2014년, 국경을 넘은 인지도

2014년 다또아는 유튜브 채널을 열며 활동 무대를 넓혔습니다. 국내 시청자뿐 아니라 해외 이용자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인 흐름이었습니다. 쉐딩과 립 메이크업 영상은 언어 장벽 없이 소비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 시점이 다또아를 ‘국내 인기 크리에이터’에서 ‘K뷰티 상징’으로 바꿔놓은 계기였습니다. 중국 최대 플랫폼 유쿠와 계약하고, 타오바오 기반 미디어 커머스를 진행한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웨이보에서 ‘중국 최고 뷰티 크리에이터’로 선정된 사실은 그 결과를 보여줍니다.

다또아

270만 구독자, 전성기 이후의 공백

한국·중국·동남아를 합쳐 구독자 수는 270만 명에 달했습니다. 유튜브 구독자 100만 명 달성 이후에는 글로벌 브랜드 M.A.C의 ‘글로벌 뷰티 히어로’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이미 정점에 오른 커리어였습니다.

하지만 2016년 이후 활동은 멈췄습니다. 최근 4년간 영상 업로드가 없었음에도, 팬들은 복귀를 기다렸습니다. 이 공백이 길게 느껴졌던 이유는, 다또아가 사라진 자리를 대체할 이름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학원생 시절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은, 그녀가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쉼 없이 달려오며 마치지 못했던 학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서울 소재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크리에이터가 아닌 학생으로의 전환은, 이미 성공을 경험한 이후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다또아 화장법 보고 자란 세대인데 더 안타깝다”는 말이 나옵니다. 다음 장면이 막 그려지던 시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레페리 최인석 의장은 다또아를 두고 K뷰티가 세계로 나갈 수 있음을 먼저 증명한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유가족 측은 근거 없는 추측을 자제해 달라고 정중히 요청했습니다. 다또아 별세를 둘러싼 이야기에는 더 덧붙일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한 차례 시대를 앞서 살았던 이름입니다. 활동이 멈춘 뒤에도 기억 속에 남아 있었던 이유가 이번에 분명해졌습니다. 지금 이 소식이 조용히 읽히는 이유도, 그 시간들이 여전히 많은 사람의 일상 한편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다또아 별세 소식과 함께 다시 불린 이름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한국 크리에이터 생태계의 시작을 떠올리게 합니다.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 속에서도 오래 남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