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치킨의 아버지’ 윤종계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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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치킨과 치킨무를 세상에 처음 내놓은 윤종계 맥시칸치킨 설립자가 향년 74세로 별세했습니다. 고인은 1970년대 말 대구에서 작은 통닭집으로 시작해 한국의 식문화를 완전히 바꿔놓은 선구적인 인물입니다. 우리가 오늘 밤 무심코 주문할 치킨 한 마리에는 그의 치열했던 고민과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할머니 조언과 물엿 한 방울

1970년대 말 대구 효목동에서 시작된 ‘계성통닭’은 처음부터 성공 가도를 달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인은 인쇄소 부도 이후 절박한 심정으로 닭을 튀겼지만, 식으면 금방 딱딱해지는 튀김 옷 때문에 고민이 깊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세상에 없던 ‘빨간 양념’을 개발하기 위해 수개월 동안 다양한 재료를 섞으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게 앞을 지나던 동네 할머니가 “물엿을 한번 넣어보라”며 툭 던진 한마디가 K-치킨의 역사를 바꿨습니다. 1980년 무렵 완성된 이 소스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달콤하고 끈적한 양념치킨의 세계적인 표준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이 물엿 코팅 덕분에 다음 날 차갑게 먹어도 맛있는 치킨을 즐길 수 있게 됐다며 고인을 추억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답답한 목 축여준 치킨무

치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단짝인 치킨무 역시 고인의 세심한 관찰에서 탄생한 위대한 발명품입니다. 튀긴 닭만 계속 먹다 보면 입안이 텁텁하고 목이 답답하다는 손님들의 사소한 불평을 그는 결코 흘려듣지 않았습니다. 무와 오이에 식초와 사이다를 황금 비율로 배합해 만든 산뜻한 찬이 지금의 아삭한 치킨무로 진화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소금만 찍어 먹던 단조로운 통닭 문화가 치킨무의 등장으로 비로소 미식의 완결성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튀김 요리와 비교해봐도 산뜻한 산미를 곁들이는 한국식 치킨은 전 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 작은 무 조각 하나가 치킨을 단순한 간식에서 하나의 완성된 ‘요리’로 격상시킨 결정적 한 수였습니다.

고인이 남긴 3대 혁신 포인트

  • 최초의 양념 소스: 고추장 베이스에 물엿을 더해 식어도 맛있는 소스 정립
  • 치킨무 발명: 기름진 맛을 잡아주는 식초 베이스의 아삭한 찬 도입
  • 염지법 대중화: 닭고기 속살까지 간이 배게 하는 과학적 전처리 방식 도입

속살까지 부드러운 염지법

닭고기 깊숙한 곳까지 간이 배게 하여 육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염지법’ 또한 고인이 대중화시킨 핵심 기술입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겉은 짜고 속은 싱거웠던 치킨이 이 과정을 거치며 전국 어디서나 일정한 풍미를 내는 고품질 메뉴로 탈바꿈했습니다. 해외 유명 프랜차이즈가 국내에 대거 상륙하기 전부터 이미 고인은 과학적인 전처리 방식을 도입해 한국 치킨의 수준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지켰던 치킨 사랑

사업이 번창하며 전국에 1,700여 개의 체인점을 운영하던 전성기를 지나 고인은 경영상의 여러 부침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대구치맥페스티벌 출범에 힘을 보태고 후배 양성에 나서는 등 치킨 산업을 향한 애정을 생의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습니다. 비록 윤종계 별세 소식은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그가 남긴 달콤하고 매콤한 위로의 맛은 오늘 저녁에도 수많은 사람의 고단한 하루를 달래줄 것입니다.

주요 연혁내용
1970년대 말대구 ‘계성통닭’ 창업 및 양념 연구 시작
1980년세계 최초 양념치킨 및 치킨무 개발
1985년‘맥시칸치킨’ 브랜드 설립 및 전국화
2025년 12월향년 74세로 별세 (경북 청도 자택)

고인이 일궈낸 양념치킨의 역사는 이제 단순한 음식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퇴근길 봉투에 담긴 고소한 냄새 속에는 평생을 바쳐 맛의 최적점을 찾아냈던 한 장인의 집념이 서려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가 세상에 선물한 이 특별한 맛의 기록을 소중히 기억하겠습니다.